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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둘째 주 러닝 기록 — 실수 하나, 그리고 글렌브룩 트레일 25km

    이번 주는 다섯 번 뛰었고 총 62.46km를 달렸다. 시간으로는 약 6시간 56분.

    숫자만 보면 알찬 한 주지만, 실제로는 실수 하나와 그 실수를 안고 끝낸 트레일 25km에 대한 이야기다. 순서대로 적어본다.

    날짜내용거리페이스느낌
    8/11 (화)저녁 러닝10.81km5:26/km좋았음
    8/12 (수) 낮베이런 (첫 코스)7.25km6:23/km편했음
    8/12 (수) 오후뉴잉턴 왕복10.02km6:39/km무거웠음
    8/15 (토)셰이크아웃9.41km6:23/km여전히 무거웠음
    8/16 (일)글렌브룩 트레일24.97km3h05m / +535m완주

    화요일 — 무너진 다음의 10km

    8월 2일에 1년 만에 30km를 뛰었다가 몸이 무너진 적이 있다. 15km부터 삐걱거렸고 24~25km에서는 팔다리에 저릿한 감각이 올라왔다. 3시간 24분, 6:46/km. 완주는 했지만 몸에 남은 기억은 붕괴에 가까웠다.

    그로부터 9일 뒤, 퇴근하고 저녁에 나갔다. Wentworth Point에서 출발해 Homebush Bay Drive를 따라 내려갔다가 Sydney Olympic Park를 크게 돌아오는, 늘 뛰던 코스다.

    10.81km, 58분 39초, 5:26/km.

    목표는 기록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결과는 합격이었다. 중간에 페이스가 무너지지 않았고 다음 날까지 남는 피로도 없었다. 10km를 5분 30초 안쪽으로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상태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이번 주에 가장 잘 뛴 러닝이었다. 그리고 이 뒤로는 계속 내려갔다.


    수요일 낮 — 처음 가본 베이런

    수요일에 하루 쉬었다. 오전에 밀린 볼일을 처리하고 버큰헤드 포인트(Birkenhead Point)에 들러 잠깐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점심 즈음, 와이프와 함께 베이런(Bay Run)에 나섰다. 이름만 수없이 들었지 실제로 뛰어본 건 처음이었다.

    아이언 코브(Iron Cove)를 한 바퀴 도는 약 7km 순환 코스다. Drummoyne, Rodd Point, Leichhardt, Lilyfield를 지나며 물을 계속 옆에 두고 달린다. 시드니 러너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유를 뛰어보고 알았다.

    • 신호에 끊기지 않는다. 한 바퀴 도는 동안 멈출 지점이 거의 없다.
    • 거리 계산이 쉽다. 한 바퀴 7km 남짓이라 두 바퀴면 14km, 세 바퀴면 하프에 가깝다.
    • 경사가 완만하다.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좋다.

    날씨는 좋지 않았다. 비가 오고 쌀쌀했다. 출발 전에는 “이럴 거면 그냥 집에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뛰니 나쁘지 않았다. 비 오는 날은 사람이 적어 코스가 한산하고, 체온이 쉽게 오르지 않아 오히려 페이스 유지가 편하다. 시드니의 겨울 러닝은 이런 날씨를 피하기 시작하면 뛸 수 있는 날이 확 줄어든다.

    7.25km, 46분 18초, 6:23/km.

    같이 뛰는 러닝이었고 처음 가보는 코스였으니 기록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문제는 끝나고 남은 생각이었다.

    “조금 모자란데 ㅋㅋㅋ. 더 잘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수요일 오후 — 아쉬움이 만든 10km

    오후 늦게 와이프가 치료 마사지 예약이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생겼고, 낮에 남은 아쉬움도 있었다. 그래서 한 번 더 나갔다.

    Wentworth Point에서 Sarah Durack Avenue를 따라 Newington 쪽으로 내려갔다 돌아오는 왕복 코스.

    10.02km, 1시간 6분, 6:39/km.

    결과부터 말하면 몸이 정말 무거웠다. 낮에 뛴 지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라 다리가 내 다리 같지 않았다. 아쉬워서 나간 러닝인데 낮보다 16초 느렸다.

    이날 하루 총 17.27km. 숫자로는 알찬 하루다. 그런데 뛰는 내내 든 생각은 “이게 훈련이 맞나”였다.

    8월 2일에 무너진 이유와 같은 패턴이다. 그때는 주중에 못 뛴 걸 주말 3일에 몰아서 채우려다 망쳤다. 이번엔 낮에 아쉬웠다고 몇 시간 뒤에 바로 채우려 했다. 규모만 다를 뿐 회복 없이 쌓아 올린다는 점은 똑같다.

    하루 두 번 뛰는 더블런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다만 그건 계획된 더블런일 때의 이야기다. 아침저녁으로 나눠 총량을 관리하는 것과, 낮에 7km 뛰고 아쉬워서 오후에 10km를 붙이는 건 완전히 다르다. 후자는 훈련이 아니라 충동이다.

    베이런이 모자랐다고 느꼈다면, 정답은 그날 오후에 10km를 더 뛰는 게 아니라 다음에 베이런을 두 바퀴 도는 것이었다.


    토요일 — 천천히 뛰려고 노력한 날

    일요일에 트레일 25km가 잡혀 있었다. 그래서 토요일 러닝의 목적은 명확했다. 기록이 아니라 몸을 푸는 것.

    이런 러닝을 셰이크아웃(shakeout)이라고 부른다. 큰 러닝 전날에 짧고 가볍게 뛰어 몸을 깨워두는 것이다. 원칙은 하나,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9.41km, 정확히 1시간, 6:23/km.

    문제는 천천히 뛰는데도 힘들었다는 것이다. 수요일에 두 번 뛴 여파가 아직 남아 있었다. 목요일도 금요일도 아니고 사흘이 지난 토요일에 다리가 무거웠다.

    무리한 러닝의 대가는 다음 날 오는 게 아니라, 사나흘 뒤에 온다.

    페이스도 흥미롭다. 6:23/km는 수요일 베이런과 정확히 같은 숫자다. 그런데 체감은 전혀 달랐다. 베이런의 6:23은 편하게 나온 페이스였고, 토요일의 6:23은 의식적으로 눌렀는데도 힘들게 나온 페이스다.

    같은 숫자가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다. 스트라바에 기록되는 건 숫자뿐이고, 그게 편했는지 힘들었는지는 남지 않는다. 나중에 로그만 보면 “이 주는 꾸준히 잘 뛰었네” 같은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된다. 느낌을 따로 적어둬야 하는 이유다.


    일요일 — 글렌브룩 트레일 25km

    그리고 일요일 아침, 블루마운틴 글렌브룩(Glenbrook)에서 트레일 25km를 뛰었다.

    • 거리: 24.97km
    • 시간: 3시간 5분
    • 누적 상승: 535m

    7시에 도착해 몸을 풀고 주변을 구경했다. 출발은 8시.

    Running Wild, 정말 작은 대회였다. 참가자가 200~300명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시드니 시내 로드 레이스의 수천 명 규모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처음엔 “이렇게 사람이 없어도 되나” 싶었는데, 뛰다 보니 오히려 좋았다. 출발선에서 밀리지도 않고 좁은 싱글트랙에서 정체되지도 않는다.

    코스는 Euroka Camping Ground에서 시작해서 Mt Portal에서 돌고 다시 Euroka Walking Trail을 따라 나와서 Red Hand Cave (진짜 Red Hand가 찍혀있다). 그리고 The Oak Trail을 따라 내려가다 Bennett Ridge Fire Trail을 지나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트레일은 다른 세계다

    첫째, 페이스라는 개념이 다르다. 로드에서는 5분대, 6분대 하며 페이스를 관리한다. 트레일에서는 그게 거의 의미가 없다. 오르막에서는 걷는 게 정답일 때가 많고, 기술적인 내리막에서는 오히려 속도를 줄여야 한다. 평균은 7분대 중반이지만 그 안에는 4분대 구간도 10분이 넘는 구간도 있었을 것이다.

    둘째, 비와 진흙이 모든 걸 바꾼다. 이날은 비가 왔고 땅이 미끄러웠다. 발을 디딜 때마다 판단이 필요하다. 어디를 밟을지, 얼마나 힘을 실을지. 로드에서는 몸이 자동으로 하던 일을 트레일에서는 계속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 다리보다 머리가 먼저 지친다.

    셋째, 사람들이 다르다. 퍼포먼스가 좋은 사람들, 경험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미끄러운 내리막을 아무렇지 않게 내려가는 걸 보면서 이건 체력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걸 알았다. 규모가 작은 대회일수록 이 종목을 오래 해온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도 알게 됐다.

    2주 전과 비교하면

    8월 2일에는 로드 30.25km를 3시간 24분에 뛰다가 무너졌다. 8월 16일에는 트레일 25km를 3시간 5분에, 비와 535m 오르막을 안고 완주했다. 무너지지 않았다.

    거리도 노면도 달라 단순 비교는 안 된다. 로드 30km와 트레일 25km는 사실상 다른 종목이다. 그래도 2주 전 그 상태를 기억하는 입장에서 이번 완주는 숫자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었다. 이번 주 내내 다리가 무거웠다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다.

    와이프도 대단하다, 길게 뛰어본게 하프 21km 인데 이번에 트레일 25km를 완주했다!


    이번 주에 배운 것

    역설적이지만 몸이 무거웠던 게 도움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컨디션이 좋았다면 초반에 욕심을 냈을 것이다. 8월 2일에 무너진 이유도 결국 초반 페이스였다. 이날은 처음부터 “무리하면 끝난다”는 걸 알고 출발했다. 미끄러운 노면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빨리 갈 수 없으니 욕심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수요일의 선택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그건 여전히 실수였다. 다만 그 실수를 안고도 일요일에 25km를 제대로 끝냈다는 건, 지난 2주 사이에 뭔가 쌓이긴 했다는 뜻이다.

    Three Bridges Run이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앞으로 지킬 것 세 가지를 적어둔다.

    1. 주중에 짧게라도 두 번은 나간다 — 8~10km, 편한 페이스로
    2. 롱런은 주 1회, 그 전날은 반드시 쉰다
    3. 아쉬움이 남아도 같은 날에 채우지 않는다

    기록이 좋아지는 것보다 다치지 않고 계속 뛰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걸 요즘 계속 배우고 있다.

    비를 맞으며 미끄러운 산길 25km를 3시간 넘게 뛰었고, 끝나고 든 생각은 “힘들었다”가 아니라 **”또 오고 싶다”**였다. 그 정도면 좋은 한 주였다고 해도 될 것 같다.

  • 그래도 나가서 뛰었던 한 주

    이번 주는 주중에 러닝을 거의 못 했다.

    화요일에 한 번 뛰고 나서는 계속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러닝화를 신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주는 운동을 별로 못 했다고 생각했는데, 주말까지 지나고 기록을 보니 그래도 50km가 넘었다.

    역시 느낌과 기록은 조금 다른가 보다.

    화요일, 밤에 혼자 오르락내리락

    화요일 저녁에는 업힐과 다운힐 연습을 해보려고 나갔다.

    요즘 평지만 계속 뛰는 것 같아서 일부러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짧은 구간을 찾아서 계속 반복했다.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다시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같은 곳을 계속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밤이 되니 조금 무서웠다. 😂

    사람도 별로 없고 어두운 곳을 혼자 계속 뛰고 있으니 괜히 뒤도 한번 돌아보게 되고…

    그냥 집에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번 주에 운동을 너무 못 한 것 같아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니 결국 19km를 뛰었다.

    19.01km | 1시간 56분 | 6:06/km

    막상 끝내고 나니 역시 나오길 잘했다 싶었다.

    운동은 항상 나오기 전까지가 제일 어려운 것 같다.

    토요일, 재미있는 일은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한다

    화요일 이후로는 결국 한 번도 뛰지 못했다.

    그래서 토요일에는 푹 자고 일어나서 오랜만에 다시 뛰러 나갔다.

    그런데 뛰러 나가기 전에 잠깐 업무를 봤다.

    토요일 아침인데 굳이 일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요즘 하고 있는 것 중에 재미있는 게 하나 있어서 조금만 해봐야지 하고 컴퓨터를 켰다.

    그러다가 문득 조금 웃겼다.

    평일에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재미있어하는 일은 토요일 아침에도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서 하고 있었다.

    주중에 하는 업무도 이런 자세로 할 수 있다면 어떨까?

    물론 모든 업무가 재미있을 수는 없겠지만 ㅎㅎ

    그래도 일을 그냥 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내가 재미있어할 만한 부분을 조금 더 찾아보면 평일도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일을 조금 하고 나서 러닝을 하러 나갔다.

    10.00km | 57분 58초 | 5:48/km

    오랜만에 뛰어서 그런지 기분도 좋았다.

    일요일, 드디어 옷걸이를 만들었다

    일요일에는 아침부터 Glenbrook으로 트레일 러닝을 하러 갔다.

    그리고 드디어 성공했다.

    옷걸이 모양!

    예전부터 Strava 지도에 옷걸이 모양을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제법 그럴듯하게 나왔다. ㅎㅎ

    사진을 보고 있으면 진짜 옷걸이처럼 보여서 괜히 뿌듯하다.

    15.39km | 1시간 58분 | 상승고도 352m

    트레일은 역시 로드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거리는 15km 정도였지만 계속 오르내리고 길도 신경 써서 봐야 하니 그냥 평지에서 15km를 뛰는 것과는 또 다른 운동이 된다.

    그래도 이런 맛에 트레일을 가는 것 같다.

    이날은 러닝 말고도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아침에 와이프가 기분이 조금 우울해 보여서 신경이 쓰였다.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괜찮아질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조금씩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러닝을 끝내고는 Glenbrook 로컬 빌리지에 있는 Vincent에 들러서 커피도 한잔했다.

    트레일 뛰고 마시는 커피라 그런지 더 맛있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는 맥주 한잔 마시고 좀 쉬었다.

    그런데 저녁에 또 나갔다

    아침에 15km 넘게 뛰었으니 오늘 운동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쉬다 보니 이상하게 조금 아쉬웠다.

    뭔가 오전에 운동을 조금 덜 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결국 저녁에 또 나갔다.

    당연히 몸은 무거웠다.

    아침에 트레일도 뛰었고 맥주도 한잔했으니 가볍게 뛰어질 리가 없었다. ㅎㅎ

    그래도 페이스 생각하지 않고 그냥 천천히 뛰었다.

    8.61km | 52분 58초 | 6:09/km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서 또 같은 생각을 했다.

    역시 나오길 잘했다.

    이번 주는 주중에 화요일 한 번밖에 뛰지 못해서 운동을 정말 못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다 합쳐보니 약 53km.

    화요일 밤에 19km, 토요일 10km, 일요일에는 트레일 15km를 뛰고 저녁에 다시 8km.

    계획했던 한 주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한 주도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이번 주에는 러닝을 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몇 번 했다.

    밤이라 조금 무서워도 일단 나가보고,

    몸이 무거워도 일단 나가보고,

    하기 싫다가도 일단 시작해보고.

    그리고 막상 하고 나면 대부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오길 잘했다.

    생각해보면 운동뿐만 아니라 다른 일들도 비슷한 게 아닐까.

    시작하기 전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많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생각보다 별것 아닌 일들이 꽤 많다.

    이번 주도 그렇게 지나갔다.

  • 1년 만의 30km,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든 주말

    지난주는 일이 몰려도 너무 몰렸다. 쉬울 줄 알았던 업무일수록 파고들면 변수가 튀어나왔고, 하나를 막으면 보강해야 할 곳이 또 하나 보였다. 그렇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러닝화를 한 번도 신지 못했다. 그리고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사흘을 연달아 뛰었다. 계획적인 배치가 아니라 밀린 숙제를 몰아서 한 쪽에 가까웠다.

    날짜거리시간페이스
    금 (7/31)8.74 km1:006:53 /km
    토 (8/1)12.09 km1:186:29 /km
    일 (8/2)30.25 km3:246:46 /km

    금요일 — 아주 좋았던 날

    금요일 아침은 정말 천천히 뛰었다. 심박수가 130대에서 얌전히 머물렀고, 홈부시 베이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숨이 차지 않았다. 오랜만에 뛰는데도 몸이 가벼웠다. 그래서 조금 방심했던 것 같다. ‘아, 그래도 그동안 쌓아둔 게 있구나’ 하고.

    토요일 — 이상하게 힘들었던 날

    토요일 오후는 전혀 달랐다. 거리는 12km 남짓, 페이스는 오히려 금요일보다 빨랐는데 심박수는 계속 높은 곳에 붙어 있었고 몸이 무거웠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흘을 쉬다가 이틀째 연속으로 뛰고 있었으니까. 몸은 정직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그 신호를 ‘컨디션이 안 좋네’ 정도로만 읽고 넘겼다.

    일요일 — 30km, 무너진 지점

    일요일은 30km를 뛰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1년 만의 30km. 걱정 반, 설렘 반이었다. 지금 내 몸이 어디쯤 와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전날 밤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그러다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났고, 뭔가 챙겨 먹을 여유도 없이 그대로 문을 나섰다.

    초반은 좋았다. 좋다고 느낀 게 문제였다. 몸이 가볍다고 페이스를 조금씩 당겼고, 15km 지점부터 갑자기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 제일 무서웠던 건 다리가 아니라 머릿속이었다. 아직 절반밖에 안 왔는데, 집까지 돌아갈 길을 떠올리니 그 거리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남은 15km가 숫자가 아니라 벽처럼 서 있었다.

    페이스를 많이 줄이고 어떻게든 붙어 보려 했지만, 24~25km부터는 팔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몇백 미터도 못 가서 멈추고, 쉬다가 걷다가 다시 뛰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30km를 채웠다. 채웠다기보다 겨우 끌고 왔다는 표현이 맞겠다.

    속상했던 이유, 그리고 다시 본 것

    1년 전 30km를 시도했을 때도 25km에서 무너졌다. 그 사이 나름대로 더 많이, 더 규칙적으로 뛰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15km에서 무너졌다. 그게 제일 속상했다. 1년 동안 뭘 했나 싶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 기록을 다시 놓고 보니, 이건 체력이 후퇴했다는 증거로 읽기엔 조건이 너무 나빴다.

    • 월~목 나흘 공백 후 사흘 연속 러닝, 그 사흘의 마지막 날
    • 전날 잠을 거의 못 잔 상태
    • 아침 식사 없이, 별다른 보급 계획도 없이 3시간 반짜리 러닝 출발
    • 초반 오버페이스

    이 네 가지가 겹치면 누구라도 15km에서 흔들린다. 팔다리가 저렸던 것도 그냥 ‘힘들어서’가 아니라 수분과 전해질, 그리고 연료가 바닥났다는 신호에 가깝다. 같은 증상이 또 나오면 그때는 가볍게 넘기지 말고 한 번 진료를 받아볼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번 30km는 ‘내 체력이 이 정도구나’를 알려준 시험이 아니었다. 준비 없이 나가면 이렇게 된다를 알려준 시험이었다. 측정한 건 체력이 아니라 준비 상태였다.

    그렇다고 반성이 없는 건 아니다. 훈련을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뤄온 건 사실이고, 몰아서 뛰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그 부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Three Bridges Run까지 두 달

    이제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이번 주말이 남긴 숙제는 분명하다.

    첫째, 주중에 짧게라도 뛴다. 주말에 몰아서 51km를 뛰는 것보다, 평일에 5km씩 흩어 놓는 편이 훨씬 낫다. 일이 몰릴수록 30분짜리 러닝을 먼저 지키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겠다.

    둘째, 롱런은 이벤트가 아니라 훈련으로 만든다. 오랜만에 큰 거리를 한 번 지르는 방식 말고, 20km대에서 시작해 조금씩 늘려가는 방식으로. 무너지지 않고 완주한 20km가, 걸어서 채운 30km보다 몸에 훨씬 도움이 된다.

    셋째, 보급을 훈련의 일부로 넣는다. 출발 전 먹을 것, 뛰는 중에 먹을 것, 마실 것. 이번처럼 공복에 3시간 반을 버티겠다는 건 훈련이 아니라 도박이다. 레이스 당일에 처음 시도할 수는 없으니 롱런 때 미리 연습해 둬야 한다.

    넷째, 잠. 전날 밤 설레서 못 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평소 수면이 무너져 있으면 롱런은 그냥 무너진다.

    마무리

    주말 내내 머리가 복잡했다. 일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러닝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쉬울 줄 알았던 업무가 파고들수록 변수를 쏟아내는 것과, 자신 있던 30km가 15km에서 흔들리는 건 결국 같은 이야기 같다. 계획은 늘 실제보다 단순하고, 실제는 늘 계획보다 지저분하다.

    그래도 30km는 채웠다. 걸어서라도, 멈췄다 가면서라도 끝까지 갔다. 무너진 뒤에도 3시간 24분 동안 코스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 그게 이번에 건진 하나다.

    두 달 뒤 Three Bridges Run에서는 이 글을 웃으면서 다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 Glenbrook Trail Run

    Glenbrook Trail Run

    몸보다 마음을 회복하는 15km

    지난주는 우리 부부에게 정말 쉽지 않은 한 주였다.

    아내는 직장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큰 일을 겪었다. 오랫동안 준비된 컴플레인을 단 며칠 만에 정리하고 대응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렸다. 나 역시 옆에서 함께 자료를 준비하며 도와주었지만, 과연 충분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둘 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밥도 대충 먹었고, 운동은 당연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나니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그래도 다행히 금요일이 지나면서 모든 자료를 제출했고, 이제는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 순간 우리는 하나만 생각했다.

    이번 주말만큼은 쉬자.


    늦잠을 자려 했지만 몸은 이미 적응해 있었다.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늦잠을 자려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며칠 동안 계속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해서인지, 둘 다 새벽 5시쯤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몸은 이미 지난 며칠의 생활에 적응해 버린 것 같았다.

    아내는 소파에 앉아 조용히 지난 일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자료는 충분했을까.’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던 부분은 없었을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느꼈다.

    아내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단순히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토요일 아침부터 회사 일을 조금 들여다보고 있었다.

    참, 둘 다 쉽게 일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자연으로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트레일러닝을 가기 싫다고 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조금 설득했다.

    “조금만 다녀오자.”

    준비를 마치고 Blue Mountains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배가 너무 고파 휴게소에 들러 Oporto에서 아침을 먹었다.

    별것 아닌 식사였지만 이상하게 맛있었다.

    차를 타고 가던 중 아내가 말했다.

    “내 마음은 아직 흐린데, 오늘 날씨는 정말 좋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조금 아팠다.

    회복은 하루 만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 느꼈다.


    Glenbrook Trail

    Glenbrook은 Wentworth Point에서 약 4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Blue Mountains National Park 안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주차장도 넓은 편이다.

    National Parks Annual Pass가 있다면 무료로 주차할 수 있고, 그렇지 않아도 하루 8달러면 이용할 수 있다.

    이번 코스는 약 14.5km, 누적 상승고도는 344m.

    처음에는 내리막이라 가볍게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긴 오르막이 이어졌다.

    아내는 걷고 뛰기를 반복했고,

    나는 이번에는 최대한 걷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숨은 차지만 천천히 한 걸음씩 올라갔다.


    자연이 주는 회복

    트레일을 달리며 숲 냄새를 맡는 순간,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 기분전환이 되는 것 같아.”

    그 말이 참 고마웠다.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날은 작은 것 하나하나가 감사하게 느껴졌다.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이곳까지 올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

    건강하게 걸을 수 있는 두 다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같은 길을 함께 달릴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하루였다.

    유로카 캠핑그라운드 가는 길

    15km는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날씨는 완벽했고,

    중간중간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달렸다.

    그렇게 걷고 뛰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15km가 끝나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이번 러닝은 기록을 남기기 위한 달리기가 아니었다.

    회복하기 위한 달리기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라오는 와이프

    Learn Run Grow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도 어쩌면 오늘과 비슷하다.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매일 배우고,

    조금씩 성장하고,

    그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했다.

    트레일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듯,

    삶도 늘 평탄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결국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가까워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트레일에서 배웠다.

    앞으로 이곳에는 트레일러닝 이야기뿐 아니라,

    데이터 분석, 공부, 투자, 그리고 호주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하나씩 기록해 보려고 한다.

    Learn. Run. Grow.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